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마지막 100km, 나를 내려놓는 걸음

야고보 사도의 발자취를 걸어보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순례자의 길로 알려져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곳이다.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Compostela) 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 루트는 10여 군데가 넘는다. 그 가운데 프랑스 국경의 상장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북서쪽에 있는 산티아고까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루트의 거리가 800km이기 때문에 하루에 20km를 걷더라도 순례를 마치는데 40일이 소요된다.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성찰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800km를 완주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시간적 제약이 있고 체력적으로 무리가 된다고 생각되면 마지막 100km를 걸어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이다.     순례자의 길은 모든 짐을 배낭에 메고 걸으며 잠은 알베르게(albergue)라는 호스텔에서 자고 음식을 사먹거나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일반적이다. 알베르게는 대부분 화장실과 부엌을 공동으로 쓴다. 가격은 하루 8~20유로 정도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면 저비용으로 순례길을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이다.   아침, 저녁을 제공하는 호텔에서 묵으면서 짐을 다음 장소로 운반해주는 가이드 서비스가 있다. 실제로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가이드 서비스 회사를 통해 마지막 100km 코스를 다녀온다. 비용은 하루 100유로 정도다.   마지막 100km의 순레길이 매력적인 이유는 나름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경험하면서도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지않는다는 이유와 일부 구간만 걷는데도 순례증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마지막 100km는 많은 순례자들의 인생에서 가장 감동과 감격이 넘치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코스는 산티아고에서 동쪽으로 116km 떨어진 사리아(Sarria)라는 도시에서 시작한다. 하루에 15~25km씩 6일 동안 걸어서 마치는 일정이다.   먼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가이드를 만나 출발점인 사리아로 향한다. 각 그룹은 최소 7명에서 많게는 15명 정도까지인데 첫날은 사리아에서 포토마린까지 약 22km를 걷는다. 가는 길목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이정표가 잘 비치되어있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5, 6월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에 참 좋은 때이다. 사방이 푸른 초목으로 덮여있고 야생화가 핀 초장이 나타난다. 한동안 시골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 통과한다. 첫날 숙박지인 포토 마린은 타운 입구에 커다란 강이 흐르는 곳으로 정갈하고 예쁜 건물들이 많다.     둘째 날은 약 25km 떨어진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지이다. 첫날과 둘째 날은 조금 많이 걸어야 한다. 일반 호텔에는 방에 전자 레인지가 없다. 한식을 먹어야하는 경우 물 끓이는 주전자를 준비하면 좋다.   셋째 날,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우비를 챙겼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 배낭이 젖으므로 배낭 커버가 필요하다. 신발은 조금 젖을 수 있으나 신발 커버나 장화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마을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카페를 겸한 알베르게가 있다. 그리고 순례자 여권을 위한 도장도 이곳에서 찍을 수 있다. 점심은 별도로 제공되지 않으므로 이곳에서 쉬면서 간식이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한다.     스페인에서는 음식에 항상 포도주를 곁들인다. 맥주도 있지만 선택 가짓수는 거의 없다. 이곳에서 흔히 보는 문어 요리인 뿔포(pulpo)와 돼지 뒷다리를 훈제한 하몽(Jamon)은 외지에서 온 이들에게는 별식이다.   순례길은 작은 마을을 여럿 지나면서 아름다운 농촌의 들판을 따라 걷는다. 스페인의 북서부 지역인 갈리시아는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하다. 많은 작물이 경작되고 목축업도 왕성하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은 음식도 푸짐하게 서브한다.   간혹 고색창연한 호텔을 만난다. 곳곳에 주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묻은 흔적이 역력하다. 주인이 직접 와인과 음식을 서빙하면서 음식에 대해 설명해준다.   다섯째 날은 아르주아(Arzua)에서 루아(Rua)까지이다. 조금 거리가 먼 약 20km를 걷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별다른 점은 없다. 순례길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면서 걷다 보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마지막 날은 루아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10km를 걸어간다. 출발한 지 오래되지않아 드디어 산티아고의 시가지가 보인다. 그리고 시가지 중앙에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순례길을 따라온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곳이자 순례자들의 종착점이다. 이곳 대성당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다.   인간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이 땅에 온 예수를 구주로 믿는 많은 순례자들은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 인생을 되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자신을 내려 놓는다. 신부들이 힘차게 올려주는 향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향이 그동안 순례길을 걸어온 순례자의 머리 위에 가득히 퍼진다.   오후에는 순례 증서를 나누는 조촐한 식을 거행하고 마지막 저녁을 함께했다. 산티아고는 고색창연한 도시이다.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건물과 도로는 걸어만 다녀도 재미나다.   순례자들과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골목길은 각종 기념품점이 가득하고 산해진미가 넘치는 음식점들로 즐비하다. 스페인 그 어느 도시 이상으로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마지막 100km 구간에서 혼자만의 성찰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은 어렵다. 스페인 북부의 순례길을 잠시 들여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스페인 시골 지방을 경험하고, 그리고 순례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배우고 그 가운데서 미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여정이었다.   김인호씨   지난 20년간 미주 중앙일보에 산행 및 여행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유튜브 채널 '김인호 여행작가'를 운영하고있다.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걸음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대성당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2023-06-08

[종교와 트렌드] 우리는 영원히 순례자

최근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필자는 짧은 일정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프랑스길 대신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시작하는 길을 택했다.     다녀와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더욱 건강해진 느낌이다. 익숙했던 곳에서 떨어지고 낯선 환경, 낯선 사람 속에 나를 던지면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된다.     떠나기 전에 약간 번 아웃 증상도 있었다. 하던 일들과 사역들도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고 이래저래 지천명에 접어드니 허한 느낌이었다.     한 일주일 아무 생각 없이 눈뜨면 걷고, 배고프면 먹었다. 사람들과 금방 친해져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쉼을 줬다.     전세계의 다양한 순례자를 만나니 사고의 틀이 넓어진 느낌이다. 거주 지역과 인종, 문화를 벗어나 타인의 가치와 경험을 듣는 다는 것은 중요하다.     요즘 특히 양극화와 SNS의 알고리즘으로 인해 인간은 더욱 편협해지고 있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에게 던지는 것은 '나'를 성장시킨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세상은 넓고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은 많다.   유럽에 있다 보면 미국에서의 삶이 어떤 점에서는 이상한 것이 있다. 너무 물질적이고 사이즈가 다 크다는 점이다. 이 길을 걸으면 소량, 미니멀이 몸에 밴다. 달랑 배낭 하나에 삶을 다 넣을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살며, 더 가지려고 버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중독된 삶을 살지 않나 생각한다.     순례 길에선 만인이 평등하다. 돈이 많든 적든, 인종이 뭐든,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하루 걸어야 할 길을 무사히 걷는 것이다. 순례길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희로애락이 있다. 그러면서 우여곡절 끝에 종착지에 도착한다.   미국서 살다 보면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는다. 우리는 속도와 시간이 중요하다. 효율적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살고 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들에 핀 꽃과 교감하고, 개, 돼지, 양들과도 소통하면서 빠름이 아닌, 때론 느리게 가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평소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때론 길을 잃어버려 돌아가더라도 인생에는 허비가 없다. 다 의미가 있다.     주변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 사람 때문에 지쳐서 순례길에 온 사람들이 다시 사람과 만나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저마다 사는 곳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주변에 무관심하고 '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순례길에서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서는 옆도 돌아보는 삶을 살지 않을까 기대한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이웃의 아픔을 같이하고 소외된 자들과 같이 하는 것이라 믿는다. 현대사회에서 휴대폰만 쳐다보면서 자기주변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길 권한다.     걷는 것도 영성이다. 위대한 철학자, 작가들이 걸으면서 했던 많은 생각은 천천히 걸음으로서 머리만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전 육체적으로 느끼며 떠오른 결과다.     순례길에서 호스텔 주인인 아나의 응원이 생각난다.     "Once a pilgrim, Always a pilgrim(우리는 영원히 순례자이다)".   [email protected] 이종찬 / J&B푸드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순례자 산티아고 순례길 대신 포르투갈 인종 문화

2023-04-17

[이 아침에] 섣달 그믐밤이 서글픈 까닭

섣달에 접어들었다. 어느새 한 해의 끝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눈물의 시대라 한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말했다. 피의 시대에서 땀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눈물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위로와 공감, 누군가 함께 흘려주는 눈물이 필요한 시대라는 얘기다.     날씨마저 쌀쌀해진 요즈음 어느 때보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때다. 이 한 해, 나는 누구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사람이었는가. 힘들고 어려운 이웃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함께 울어준 적이 있는가. 울어주기는커녕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 좌절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계절 탓일까. 외롭다는 사람이 많다. 고독하다고 한다. 외로움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 소외로 생기는 것이고, 고독은 내가 나를 스스로 소외시킬 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나만 외롭고 고독할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외롭게 태어나 고독하게 살다가 혼자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시인은 산그늘도 외로워 저물녘 마을을 찾아 내려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2000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일이다. 혼자 걷는 길은 때로 외롭다. 너무 외로워 제 발자국을 벗 삼아 사막을 걸었다는 어떤 이의 말에 공감이 갔다. 그때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불러내어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골목에서 훌쩍거리는 안쓰러운 어린 나를 데려와 쓰다듬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속에 앙금으로 남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지난 일을 사과받고 누군가에게는 용서를 빌기도 했다. 새가 바람에 몸을 맡기듯 길바닥에 나를 맡기고 걸었다.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 쓰러지면 쓰러진 곳에 나를 맡겨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 길에서 눈보라 치는 날이 있었다. 눈이 내리는 하늘의 길은 있어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걷는 길이 바로 내 길이었다. 내 길은 내가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가볍게 걷기 위해서는 가벼워져야 한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비워야 한다. 덜어내고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홀가분하게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다. 빈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두 이 해를 열심히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안 뒤처진 사람도 넘어진 친구도 있고,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서로 위로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때.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해 함께 울어주어야 할 시간이다. 이 눈물의 시대에.     섣달이다. 이즈음 느껴오는 사람들의 정서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조 30대 광해군이 재임 8년, 과거시험에 출제했던 문제다. 책문(策問), 일종의 논술시험 문제다. 같은 문제가 지금 나에게 주어진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는 중이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그믐밤 섣달 섣달 그믐밤 문학평론가 이어령 산티아고 순례길

2022-12-20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